만날 사람은 만나지는 것이고 만나지지 못할 사람은 평생 만나지 못한다. 불교 용어이기도 한 이 말은 우리 남편과의 만남을 얘기하는 것 같아 가슴속에 꼭 담아두고 있는 말이다. 즉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지게 되어 있고, 떠날 사람은 떠나게 된다는 말처럼 나의 오랜 친구에서 연인으로 지금은 나와 우리 가족을 지키고 서 있는 든든한 나무이자 사랑하는 내 소중한 남편 손영호씨와의 인연이 그렇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만났으니 인연으로 보면 오랜 친구이자 부부이다. 학창시절 서로가 어려운 집안 환경에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24살의 젊은 나이에 건강한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부모님의 가업인 제수과자 도매업을 이어받아 가정경제를 일구고, 열심히 아이들을 양육하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 모두 대학에 입학시키고, 지금은 장학생으로 성장시켰으니 우리 부부의 꿈을 대신 이뤘다고 생각한다. 큰아들 녀석이 이제 4학년 졸업반으로 기술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둘째도 해양고를 졸업하여 해군입대와 함께 조타사로 근무하고는 다시 대학에서 항해사 자격을 취득하고는 더불어 산업잠수사의 일에 도전하고 있으니 부모로서는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더 있을까 싶다.
우리 부부가 50년을 살아오면서 어디 늘 기쁜 일만 있었겠는가? 우리 부부에게도 좋은 날 뒤에 가려진 위기의 시간도 있었다. 아들 녀석들이 중학생이던 시절 남편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병원을 제집 드나들던 시절 나는 늘 눈물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남편은 편도 제거 수술을 하고 나서 갑자기 쓰러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119 구급대를 불렀고, 의사선생님은 죽을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했고, 그 때 나는 어린 아들들을 껴안고 울며 함께 죽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남편은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대에 올랐고,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무사히 입원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남편의 힘겨운 몸짓에 환자를 부여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
효자인 아들들과 가족 분들의 간호 덕에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건강하게 퇴원하던 그 날 남편은 나에게 조그맣게 사회에 봉사하며 살자는 제의를 해왔고, 나 역시 남편을 건강하게 가족 품으로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날 이후 매주 저소득층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앞장서서 봉사하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따뜻한 밥과 밑반찬을 만들고, 청소년 범죄예방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남편보다 음식 솜씨가 능숙하진 못하다. 남편은 쉽게 쉽게 반찬들을 뚝딱 만들어 내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나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 남편이 경기도 연천에서 군대생활 시절 한 달에 한 번꼴로 면회를 갈때면 찬합도시락에 음식들을 가득 만들어 갔는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맛은 별로였지만 여자친구의 정성이 갸륵하여 맛있게 먹었다는 후일담은 살짝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자원봉사는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날도 자원봉사를 위해 준비를 하던 중 우송정보대학에서 입학설명회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보라고 하는 자원봉사 대장님의 말씀에 ‘무슨 대학 입학설명회를 자원봉사 현장에서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없이 지나치다가 교수님이 보자기에 잔뜩 싸오신 음식들을 보며 순간 ‘나도 조리를 배워서 보다 기술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또 하나의 인연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부부는 우송정보대학 마스터셰프과 전공체험에 참가하면서 대학진학에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우리도 늦었지만 대학에 지원해 볼까요?” 제안을 하자 평소에 대학이야기를 꺼내었을 때 관심 없었던 남편이 더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사실 남편은 수술 이후에도 몸을 많이 혹사시켜 아직도 건강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꿈을 위해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들도 부모님의 대학진학에 매우 긍정적으로 동의해 주었고, 우리 부부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2024년 우송정보대학 마스셰프과에 입학을 하여 조리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이제는 우리 가족 4명 모두 대학생이 된 셈이다. 큰아들이 학번이 제일 위고, 둘째 아들이 그 다음, 우리 부부는 대학 24학번 새내기로 어엿한 대학생 가족이 되었다.
지금은 현재하고 있는 자영업과 사회활동을 주위 분들과 함께하며 대학에서는 조리교육을 다양하게 배우고 있고, 아들 둘을 키우며 미뤄왔던 대학공부를 부부가 함께 하고 있으니 대학생 선배인 아들들이 부모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조리수업 때마다 남편이 설거지와 궂은일을 해결해 주고 서로가 격려하고 서로를 발전시키는 소중한 파트너로 사랑과 연대감을 키우고 전문조리를 배워 더 다양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오늘 나는 트롯가수 이찬원의 시절인연‘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을 하며 살아가야지. 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가사를 읊조리며, 인생2막의 새로운 시절인연 꿈을 꾼다.